독서

수업을 왜 하지?

멋쟁이샘 2015. 10. 16. 10:44

 

수업을 왜 하지?  (수업으로 읽는 우리 교육)

저자 서근원 지음 출판 우리교육 펴냄 | 2007.02.10 발간

 

1. 우리 교육

  교사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수업을 하게되면 교사들은 자신의 관점을 고수하느라고 개별화되거나 독선에 빠질 수 있으며, 그로 인해서 교육과정뿐만 아니라 학생의 학습 역시 일관성을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몇 가지 방법을 통하여 수업을 표준화함으로써 교사가 교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가르칠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 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왔다.

  첫째는 교육과정을 최대한 상세하게 만드는 것이다. 교과별 교육과정 내용을 더욱 세분화하고, 그 내용을 가르치는 데 적합한 교수 방법과 평가 내용까지 지시함으로써 교육과정이 교사에 따라서 서로 다르게 해석되거나 서로 다른 수업으로 구체화될 수 있는 여지를 줄이고 있다.

  둘째는 교과서를 수업 프로그램 형태로 제작하는 것이다. 수업 중에 교사와 학생이 할 일 등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셋째는 교사에게 컴퓨터를 이용한 수업을 장려하는 것이다. 수업 과정이 프로그램 형태로 제공되어 마우스를 움직이는 것 이외의 다른 일을 하지 않고도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넷째는 국가 또는 지역 차원의 표준화된 평가를 실시하는 것이다. 학교 또는 교사들은 평가에 부합하는 내용과 방법으로 수업하게 될 것이다.

  다섯째는 교사들이 수업 기법 등에만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각종 현장 연구 대회, 장학, 연수 내용들은 대부분 교수 방법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을 통하여 수업을 표준화함으로써, 학생의 학습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첫째는 표준화된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다양한 수준과 관심, 각 학급이 처한 독특한 상황 등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 예를 들면, 폭우로 수해를 입은 지역의 학생들에게 <비 오는 날>이라는 시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개별 학생의 수준과 학습 속도와 관심, 학급의 여건과 상황 등을 고려하여 그에 적합한 수업을 찾고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둘째, 표준화된 수업 속에서 학생의 학습은 정보를 저장하는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이 많다. 표준화된 수업 프로그램의 목적을 달성하는 한가지 방안은 교사가 수업 중에 학생을 통제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삐아제의 용어를 빌어서 말하면, 이 경우에 아이들은 조절(accommodation)하지 못하고 동화(assimilation)만 하게 된다.

--> 교사가 자신의 주관을 배제하고 표준화된 방식으로 수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과정이 제시하고 있는 관점이 유일하거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학생의 학습을 일관되고 통일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쪽에서는 수업을 표준화할수록 교사의 역할이 축소되며, 그만큼 학생들이 정작 중요한 것을 학습하지 못하므로, 교사가 자신의 주관을 바탕으로 수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 쟁점은 '교사의 자율성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또는 '교사의 자율성은 무엇인가?'라는 보다 일반적인 쟁점으로 나아갈 수 있다.

 

2. 행동주의 수업과 득과 실

  행동주의 교육학자들은 행동주의 심리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학습을 행동의 변화로 규정하고, 교육을 '인간의 행동을 계획적으로 변화시키는 일'로 정의 한다. 이를위해 교사는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 달성에 필요한 내용을 선정하고 조직하여 효율적인 방법으로 지도한 뒤, 그 결과를 평가한다. 이때 평가는 목표에 도달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고, 그 목표는 외적인 행동의 변화이므로, 평가 역시 외적인 행동의 변화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변화를 확인하는 일은 객관적이어야  하므로, 목표 역시 객관적으로 관찰해야 기술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행동주의 교수 체제에서는 학습을 행동의 변화로 본다는 점을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수업 장면에서는 학생이 보여야 할 행동을 학습 목표라는 이름으로 직접적으로 지시한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은 목표가 지시하는 바대로의 행동을 학습함으로써 학습했다는 증거를 보이게 된다.

  그러나 앵무새가 자신의 이해와 무관하게 말할 수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행동만으로는 이해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 행동이 이해의 표현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업이 행동의 변화를 목표로 삼고 있는 이상, 의미를 이해하는 일은 소홀이 될 수 밖에 없다.

  어느 학교에 가건 학습 목표는 반드시 행동형으로 진술하고, 시간 운영 계획을 세밀하게 세워서 계획에 충실하게 맞추어 수업을 하도록 요구받는 현실에서 행동주의 교수방법이나 통제 방법을 버리는 일도 쉽지 않다.

--> 학생이 사물이나 현상 사이의 관련을 스스로 파악하도록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그 조치에는 교사가 진도에 쫓기지 않고 학생들에게 충분한 여유를 주는 가운데 학생들이 자신이 이해한 바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도록 하는 것 등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교사는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학생들의 수준과 언어를 알고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교사 자신이 교과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학생들의 수준은 계속 변화하고 성장하므로, 교사는 끊임없이 교과와 학생들을 새롭게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좋은 수업 기법이나 형태는 교사가 이런 점들을 충분히 고려하는 가운데 학생의 이해를 위해서 노력할 때 부수적으로 따라 나오는 것이다.

 

3. 어떤 수업이 좋은 수업인가

  교사가 수업을 한다는 것은 교육과정, 교과서, 교수 방법과 절차 등에 얽매인 채 단지 송유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교과를 이해하고, 바로 그것을 학생들이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늘 불안이 따르고, 교사는 그 과정 속에서 성장해 간다. 그런데 여기에는 뭔가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 실제 수업은 순수하게 교과를 가르치고 배우기만 하는 일이 아닌 것이다. 교과만을 중심에 놓고 수업을 생각할 경우에는 교사와 학생들의 현재의 삶 또는 둘 사이의 관계는 무시되거나 교과를 잘 가르치기 위해서 부차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것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수업에서 '교사와 학생들의 현재의 삶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려가 빠졌을 경우에 그 수업이 삶으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다.

  수업은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보이는 것이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며, 교사의 전 삶을 함축하여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수업을 살아감'으로써 우연한 던져짐을 조금씩 만남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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